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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따라서 걷는 유럽 예술 기행> 누넨, 아를, 오베르

by notes0137 2025. 4. 7.

빈센트 반 고흐는 예술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그의 그림만큼이나 인생 자체가 강렬한 예술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의 배경에는 실제로 그가 살고 사랑했던 장소들이 존재하며, 오늘날 많은 여행자들이 그 발자취를 따라 유럽을 여행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반 고흐가 활동했던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문화유산과 예술, 그리고 역사 탐방이 어우러진 유럽 여행 코스를 소개합니다. 예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감성 여행을 찾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프랑스 아를 고흐가 머물던 병원 사진
에스파스 반 고흐 (프랑스 아를)

<반 고흐 따라서 걷는 유럽 예술 기행> 네덜란드 누넨

누넨은 고흐가 진정한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출발점입니다. 1883년 말부터 1885년까지 머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당시 고흐는 고리타분하고 어두운 색조의 팔레트를 사용해 농민들의 노동과 고단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누넨에서 그려진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은 그의 화풍 초기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농촌 사람들의 절제된 삶의 리얼리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흐는 이 시기에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와 노동, 신앙에 대한 깊은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경 속 이야기와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려 했으며,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도 내면의 진실을 포착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누넨의 자연은 어둡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서 고흐는 인물의 감정과 삶의 무게를 진하게 표현해 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넨은 화려하진 않지만 고흐의 기반이 된 시기이자,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싹튼 장소였습니다. 오늘날 누넨에는 고흐 박물관, 그의 생가 터, 드로잉 장소를 잇는 ‘고흐 자전거 루트’가 조성되어 있어 예술 여행자들이 그의 초창기 감성과 풍경을 몸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고흐가 스케치북을 들고 앉아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프랑스 아를

1888년 2월,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향합니다. 눈부신 햇살, 선명한 색감, 활기찬 시장, 로마 유적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고흐에게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도시였습니다. 그는 “여기 남부 프랑스의 빛은 아마 모든 화가가 꿈꾸는 것이다”라고 편지에 남길 정도로 아를의 빛에 매료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갈색과 회색이 중심이던 그의 화풍은 이곳에서 노랑, 파랑, 초록, 주황 등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해바라기’ 연작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고흐는 그 꽃에 대해 “빛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노란 집’은 그의 이상향을 담은 공간이자, 예술가 공동체의 실현을 꿈꾼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는 폴 고갱을 초청해 함께 그림을 그렸지만, 두 사람의 의견 충돌과 감정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 고흐는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자신의 귀를 자해하는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를 시기는 고흐의 창작력과 실험정신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밤의 카페 테라스’, ‘붉은 포도밭’, ‘별이 빛나는 밤’의 전신이 되는 야경 연작들이 이때 등장했고, 선의 왜곡과 색의 감정적 활용 등으로 새로운 시각 언어를 구축하게 됩니다. 아를은 고흐가 빛과 고통을 모두 경험한 도시이며, 그 모순 속에서 진정한 창작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현재 아를 시청과 문화재단은 고흐가 머문 장소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며, ‘반 고흐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 그가 남긴 시선과 풍경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거리 곳곳의 패널과 재현작들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1890년 봄, 고흐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머물며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정신병원 퇴원 이후 고흐는 잠시 평화를 되찾는 듯 보였고, 불과 70여 일 만에 7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왕성하게 작업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엔 깊은 고독과 내면의 고통이 서려 있었습니다. 이 시기 대표작 중 하나인 ‘까마귀 나는 밀밭’은 그의 심리 상태를 강하게 반영합니다. 드넓은 들판, 하늘을 가로지르는 까마귀 떼, 구불구불한 길은 절망과 혼돈, 동시에 자유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해석됩니다. ‘오베르의 교회’는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 대비로 종교에 대한 고뇌와 탈피를 시도한 작품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의 서신을 통해 작품 활동을 보고하고 생의 불안을 토로했습니다. “나는 늘 그림을 통해 나 자신을 구원하려 한다”라고 했지만, 결국 7월 27일 스스로에게 총을 쏜 후 이틀 뒤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묘는 오베르 마을 외곽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생 테오의 묘도 함께 놓여 있습니다. 형제를 이어주는 담쟁이덩굴이 자라난 이곳은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 오베르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지만, 고흐의 마지막 시간을 품은 특별한 장소로 여겨지며 예술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라부 여관, 고흐 박물관, 그의 마지막 화폭에 등장한 풍경들을 따라 걷는 루트는 내면을 성찰하게 하는 감동의 여정을 선사합니다.